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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비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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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 비어든은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한 미국의 야구 선수이다. 1948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소속으로 20승,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하며 팀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1948년 월드 시리즈 3차전에서 완봉승을 거두고, 6차전에서 세이브를 기록하며 활약했다. 이후 영화 출연, 마이너 리그 선수, 코치, 라디오 방송국 근무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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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비어든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50년 야구 카드에 담긴 진 비어든의 모습
본명Henry Eugene Bearden 헨리 유진 비어든
출생일1920년 9월 5일
출생지미국 아칸소주 렉사
사망일2004년 3월 18일
사망지미국 앨라배마주 알렉산더시티
신장190cm
체중89kg
투구좌투
타석좌타
포지션투수
프로 입단 연도1939년
첫 출장 (MLB)1947년 5월 10일
마지막 경기 (MLB)1953년 9월 5일
선수 경력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MLB) 팀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47~1950)
워싱턴 세너터스 (1950~1951)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951)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1952)
시카고 화이트삭스 (1953)
수상 경력
월드 시리즈우승 (1948)
AL 평균 자책점1위 (1948)
통계 (MLB)
승-패 기록45승 38패
평균 자책점3.96
삼진259

2. 어린 시절과 군 복무

진 비어든은 미국 아칸소주 렉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미주리 태평양 철도에서 일했으며, 가족이 테네시주로 이주하면서 비어든은 그곳의 멤피스 기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1] 1939년에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계약을 맺고 클래스 D의 몰트리 패커스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고, 그해 5승 11패의 성적을 기록했다. 1940년과 1941년에는 플로리다 이스트 코스트 리그의 마이애미 비치 플라밍고스에서 뛰었다. 1940년에는 18승과 1.6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34] 1941년에는 17승과 2.4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7] 1942년 시즌에는 사우스 애틀랜틱 리그의 서배너 인디언스오거스타 타이거스에서 뛰었으며, 시즌이 끝난 후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미국 해군에 입대했다.[1]

비어든은 원래 뉴저지주의 비행선 기지에서 복무했지만,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태평양 전선경순양함 USS 헬레나에 배치받았다고 한다. 그는 1943년 7월 6일 쿨라만 해전 당시 기관실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함정이 일본의 어뢰 3발을 맞았다고 이야기했다.[1] 이로 인해 함정이 가라앉으면서 선원들은 탈출해야 했고, 비어든 본인은 갑판 위 사다리에서 떨어져 두개골 골절과 으스러진 슬개골 부상을 입었다고 덧붙였다. 1945년 초까지 병원에 입원해 있던 비어든은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머리와 무릎에 금속판을 삽입하는 수술까지 받았다고 한다.[1] 1949년에 출판된 ''더 스포팅 뉴스''의 ''Official Baseball Register''에 실린 자서전 기사에서, 비어든은 자신의 전쟁 경험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리며 "저는 그저 다른 수병들보다 운이 좋았던 평범한 수병일 뿐이었습니다. 제게는 업계 최고의 정형외과 의사라고 생각되는 분을 만났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6] 비어든이 헬레나에서 겪었다고 주장한 이야기는 그가 죽을 때까지 회자되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해군에서 복무한 것은 맞지만, 헬레나가 침몰할 당시에는 플로리다주에 있었다.[2] 비어든의 해군 복무 기록 사본 또한 헬레나에 관련된 이야기를 뒷받침하지 않는다.[3]

이후 1945년에 야구 선수로 복귀해 뉴욕 양키스 산하 클래스 A 마이너 리그 구단인 이스턴 리그의 빙엄턴 트리플렛츠에서 뛰며 15승을 올렸다. 1946년에는 트리플 A의 오클랜드 오크스로 승격되었으며, 그곳에서 감독 케이시 스텐젤의 지도로 너클볼을 구사하는 법을 배웠고,[4] 15승 4패, 3.1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7] 덕분에 메이저 리그에서 투구의 80%를 너클볼로 던지는 너클볼 전문 투수가 되었다.[5] 1946년 12월 6일, 뉴욕 양키스는 비어든과 할 펙, 알 게텔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보내고 셤 롤라, 레이 맥을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클리블랜드의 빌 비크 구단주는 원래 스펙 셰이를 트레이드로 데려오고자 했지만 양키스가 이를 거절했고, 이후 스텐젤 감독과 오클랜드의 투수진에 대해 논의한 후 그의 제안에 따라 비어든의 영입을 결정하며 트레이드가 성사되었다.[4]

3. 프로 야구 선수 경력

진 비어든은 1947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메이저 리그 경력을 시작했다. 데뷔 첫해에는 잠시 마이너 리그로 내려가기도 했으나, 1948년에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고,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하는 등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42][15] 이후 워싱턴 세너터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 여러 메이저 리그 팀을 거쳤다. 선수 생활 후반기에는 마이너 리그의 여러 팀에서 활동했으며, 1957년 시즌을 끝으로 공식적인 야구 선수 경력을 마감했다.[27]

3. 1.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47-1950)

스프링 트레이닝 이후 1947년 정규 시즌이 시작되며 비어든은 메이저 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다. 그해 5월 10일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나, 1/3 이닝 동안 3실점하며 부진했다. 경기 후 트리플 A 팀인 인터내셔널 리그볼티모어 오리올스로 강등되었다. 하지만 비어든은 인터내셔널 리그 구장들의 크기가 너무 작다는 이유로 투구를 거부하고 팀을 떠났다. 이후 빌 비크 구단주가 비어든을 다시 오클랜드 오크스로 임대 보내는 데 동의하면서 복귀했다.[33][6] 오크스에서 남은 시즌 동안 케이시 스텡걸 감독과 재회한 비어든은 198이닝 동안 16승 7패, 2.8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34][7]

1948년, 비어든은 스프링 트레이닝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메이저 리그 로스터에 포함되어 시즌 내내 1군 선수단과 함께했다. 5월 8일 워싱턴 세너터스를 상대로 시즌 첫 경기에 출전했다. 선발 등판한 첫 7경기 중 6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 중 네 번은 완투승이었고, 5월 22일과 6월 8일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는 두 차례 완봉승을 기록했다.[35][8] 9월 1일까지 13승 6패, 평균자책점 2.74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투구를 이어갔다. 루 부드로 감독은 시즌 마지막 달에 선발 로테이션을 4인 체제로 운영하며 비어든에게 더 많은 등판 기회를 주었다.[36][9] 9월 6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에게 패배했지만, 이후 7번의 선발 등판에서 모두 승리했다. 특히 9월 28일 화이트삭스와 10월 2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는 연이어 완봉승을 거두었다. 시즌 마지막 날인 10월 3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는 동일한 승수를 기록하며 리그 우승팀을 가리지 못했다.[37][10]

순위 결정전은 10월 4일 펜웨이 파크에서 열렸고, 선수 겸 감독이었던 루 부드로는 선수단 투표를 거쳐 비어든을 선발 투수로 결정했다.[38][11] 단 하루 휴식 후 등판한 비어든은 보스턴 타선을 5피안타 1자책으로 막아내며 완투승을 거두었고, 부드로의 4안타 2홈런 활약에 힘입어 팀은 8–3으로 승리했다.[39][12] 이 승리로 비어든은 시즌 20승을 달성했고, 평균자책점은 2.47로 아메리칸 리그 1위에 올랐다. 이어진 1948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내셔널 리그 챔피언 보스턴 브레이브스를 상대했다. 10월 8일 열린 3차전에서 비어든은 5피안타 완봉승을 거두며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고, 타석에서도 2루타 1개와 1득점을 기록했다.[40][13] 10월 11일 6차전에서는 선발 밥 레몬에 이어 구원 등판하여, 8회에 승계 주자 2명을 홈으로 들여보냈지만 9회를 무실점으로 막고 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의 4–3 승리와 월드 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었다.[41][14] 비어든은 1948년 시즌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 1위, 다승 공동 2위(20승), 완봉 2위(6회)를 기록했으며, 리그 MVP 투표에서 8위, 올해의 신인상 투표에서는 유격수 앨빈 다크에 이어 2위에 올랐다.[42][15]

1948년 시즌 종료 후 비어든은 할리우드로 가서 영화 ''스트래톤 스토리''와 ''키드 프롬 클리블랜드''에 본인 역으로 출연했다.[43][16] 1949년 시즌에도 선발 로테이션의 일원으로 시작하여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홈 개막전에 등판했지만, 그의 너클볼은 상대 팀 감독들에게 점차 공략당하기 시작했다. 특히 뉴욕 양키스의 신임 감독이 된 케이시 스텡걸은 선수들에게 비어든의 너클볼이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으니 스윙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다.[38][11] 여기에 다리의 궁둥신경 문제까지 겹치면서 비어든은 불안정한 투구를 보였다. 양키스와의 시즌 첫 선발 등판에서는 16피안타 4실점을 기록하며 3–4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다.[44][17] 6월까지 완투에 실패하는 등 부진이 이어지자 7월부터는 불펜으로 이동하여 남은 시즌을 보냈다. 결국 1949년 시즌을 8승 8패, 평균자책점 5.10으로 마감했으며, 폭투 11개로 이 부문 아메리칸 리그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42][15]

3. 2. 워싱턴 세너터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1950-1953)

1950년 시즌 비어든의 역할은 구원 투수였으며, 시즌 14경기에 등판해 5.96의 평균자책점으로 부진하자 소속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그를 웨이버 공시했다. 그해 8월 2일 워싱턴 세너터스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뉴욕 양키스를 제치고 그를 1만달러에 영입했다. 지난 시즌의 부진이 세 번의 선발 등판 이후 시즌 내내 선수를 따라다니던 다리 부상의 결과라고 생각했던 비어든은 반등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4][18] 비어든은 세너터스에서 12경기에 출전하여 3승 5패, 4.21의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쳤다. 8월 22일에는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는 "인디언스를 페넌트레이스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선발 등판을 요청했고, 결과적으로 팀은 5–1로 패배했다.[19]

이듬해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비어든은 4월에 워싱턴 소속으로 한 경기에 출전한 뒤 방출되었다. 이를 놓치지 않고, 좌완 구원 투수가 필요했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그를 웨이버로 영입했다.[20] 그해 비어든은 디트로이트 유니폼을 입고 37경기에 출전해 3승 4패, 4.3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1952년 2월 14일, 디트로이트 구단은 밥 케인, 딕 크리호스키와 비어든을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로 보내고, 맷 배츠, 딕 리틀필드, 클리프 메이프스, 벤 테일러를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15]

브라운스 유니폼을 입은 비어든은 1952년에 선발과 구원 각각 비슷한 비율로 기용되었다. 시즌 34경기에 출전했는데 그중 16경기가 선발 등판이었으며, 7승 8패, 평균자책점 4.30, 폭투 10개(AL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타격 성적은 훨씬 나아졌는데, 메이저 리그 데뷔 시즌부터 1951년까지 통산 타율 .202를 기록한 반면 1952년 시즌에는 65타수에서 타율 .354를 기록하며 그해 가장 좋은 타격을 보여준 투수였다.[15][21] 시즌이 종료된 후에는 다른 메이저 리그 선수 동료들과 지방 순회 경기를 다녔고, 니그로 아메리칸 리그의 멤피스 레드삭스와 시범 경기를 치렀다.[22]

1953년 3월,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는 비어든을 방출했고,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그를 웨이버로 영입했다. 그해 비어든은 화이트삭스에서 25경기에 출전하여 3승 3패, 2.9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소속팀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시즌 후 비어든과 퍼시픽 코스트 리그시애틀 레이니어스의 아트 델 두카와 알렉스 가보스키를 맞바꾸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15]

3. 3. 시카고 화이트삭스 및 마이너 리그 (1953-1957)

1953년 3월,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는 비어든을 방출했고,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그를 웨이버 공시로 영입했다. 그해 화이트삭스 소속으로 25경기에 출전하여 3승 3패, 2.9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화이트삭스는 비어든을 퍼시픽 코스트 리그시애틀 레이니어스로 보내고 아트 델 듀카와 알렉스 가보스키를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15]

비어든은 1954년 레이니어스 소속으로 44경기에 출전하여 11승 13패, 4.0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듬해 그는 엘머 싱글턴과의 맞트레이드로 샌프란시스코 실스로 이적했다.[23] 시즌 전반기에 10승 1패를 기록하며 당시 퍼시픽 코스트 리그에서 1위를 달렸고,[24] 시즌을 43경기 18승 12패, 평균자책점 3.52로 마쳤다. 1956년에는 새크라멘토 솔론스에서 뛰며 34경기에서 15승 14패, 3.4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7] 오프시즌에는 쿠바 리그의 시엔푸에고스 소속으로 14경기에 등판했고, 팀이 우승한 1956년 캐리비안 시리즈에도 참가했다.[25]

1957년 시즌을 새크라멘토에서 시작해 4경기에 등판한 후, 비어든은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미니애폴리스 밀러스로 보내졌다. 밀러스 소속으로 34경기에 출전해 5승 6패, 5.3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시즌이 끝난 후, 비어든은 1년 전 새크라멘토에서의 트레이드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 겸 코치로 새크라멘토에 복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26]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칸소주 헬레나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 KFFA의 매니저로 임명되면서 공식적으로 야구 선수 경력을 마감했다.[27]

4. 은퇴 이후

선수 시절에는 오프 시즌에 엑스트라나 스태프 등으로도 일하며 영화 산업에도 몸담았다.[33][6]

선수 경력 막바지에 아칸소주 헬레나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 KFFA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야구 선수 경력을 마무리했다.[54][27] 은퇴 후에는 아내 로이스(Lois)와 자녀들과 함께 헬레나에 거주했다.[28][1] 헬레나에서 음식점 운영, 자동차 대리점(플라자 오토 세일즈) 관리자, 유소년 야구 코치 등 여러 종류의 사업을 했다.[28][1]

비어든은 2004년 앨라배마주 알렉산더시티에서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28][1]

5. 통산 기록

연도소속등판선발완투완봉무4구홀드승률타자이닝피안타피홈런볼넷고의4구사구탈삼진폭투보크실점자책점평자책WHIP
1947년클리블랜드 가디언스100000040.1201100103381.009.000
1948년37291562071.741935229.2187910663805072622.431.276
1949년321950880.500593127.0140692424111077725.101.827
1950년14300130.25021145.15753220103132316.151.963
워싱턴 세너터스12940350.37531068.18113312202035324.211.668
'50년 합계261240480.333521113.213866532305167634.991.786
1951년1100000162.2602001005516.883.000
디트로이트 타이거스37421340.429476106.011265841385058514.331.604
'51년 합계38521340.429492108.211866041395063564.641.638
1952년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341630780.467676150.21581378914510189724.301.566
1953년시카고 화이트삭스25300330.50025058.14883310243027192.931.389
통산: 7년[42]1938429745381.5423471788.1791484352892594023983473.961.555


  •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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